강화에서 역사의 엄중함을 느끼다

최병기 원장 2020-01-07 10:47:27

▲ 최병기 좋은얼굴 최병기치과의원 원장

오늘은 서울사대부고 30회 동기 친구들과 강화역사기행을 가는 날이다. 10여 년 전 열린의사회 몽골 의료봉사에서 만난 노건 친구의 역사 문화해설로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떠나는 것이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지만 아침에는 날씨가 너무나 좋다. 더구나 남녀 공학이라서 여자 친구들이 전날 저녁 늦게까지 준비한 감 등 과일과 당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정성 들여 요리한 음식을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다.


강화대교를 건너 54개의 돈대(현재의 해군초소) 중 하나인 월곳돈대 연미정에 도착하니 한강하구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을 보이는 정자가 있고, 600년 된 두 그루의 느티나무 중 한 나무가 지난 태풍으로 쓰려져 있다. 이곳은 정묘호란 때 여진족과 형제의 맹세를 한 치욕의 역사 현장이다.


해협을 낀 유일한 성인 문수산성을 배경으로 강화의 멋진 가을 풍광을 즐기면서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12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 강화 고인돌마을에 갔다. 이곳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53톤의 상부돌이 영국의 스톤네이즈의 돌보다 크다고 한다. 3000년 전에 500명의 장정이 동원되어 돌을 옮겨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잠시 토굴에 들어가 선조들의 삶에 취해 본다.


고인돌을 보고 난 후 한국 최초의 한옥 성당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에 도착하였다. 외부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나무와 큰 종이 있다. 내부는 서유럽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져서 유교와 불교를 아우르는 신부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고려궁지가 앞에 펼쳐져 있고, 연개소문이 태어났다는 곳도 보이고, 풍수지리적으로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너무나 좋은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성당 바로 밑에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철종의 어렸을 적 생가를 복원한 용흥궁에 들렀다. 살펴보니 16살부터 21살까지 풍양조씨의 그늘 아래에서 비운의 삶을 마감한 철종과 당시 폐쇄적인 조선의 상황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몇몇 친구들과 500m쯤 강화초등학교 옆 예쁜 길을 걸어가니 고려궁지가 있다. 1230년 고려 고종께서 개성에서 몽골족을 피해 이곳에서 37년을 통치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상황이 1000년 전에도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 궁터에 올라가서 돌아보니 언제 또 우리에게 이러한 비극이 다시 올지 모르므로 늘 각자가 깨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강화삼계탕으로 점심 식사한 후에 북한 생활상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남북분단의 비극을 느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하구가 보이고 하구 뒤로 벽란도가 있고 우측으로 개성공단, 송학산을 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 비극을 벗어나서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잇는 통일된 세계 속의 자유대한민국을 꿈꾸어 본다.


그 뒤에 섬 속의 섬 교동도에 도착하여 연산군의 유배지를 지나 대륭시장에서 1970년대의 어릴 적 우리 시골 장터의 향수에 젖어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하였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석모도 낙가산의 보문사를 향했다. 양양의 낙산사,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3대 해상 관음 기도 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하였고 22구의 나한 석상이 석굴에 있다. 가파른 400계단을 올라가니 모든 소원을 빌면 이루어 준다는 바위에 새겨진 해상 관음 기도상이 있다. 가족건강과 우리 환자분들의 빠른 쾌유를 빌고 필자의 서원인 CBK splint(두개골균형교합안정장치)의 세계화를 기도하였다.


일기예보대로 보문사에서 내려올 때 비가 좀 내려 가을비 우산 속 정취를 친구들과 느껴 보았다. 해안가에 우리만의 공간인 식당에 도착하였다. 2시부터 준비한 조병연 문화복지팀장님의 초등학교 친구들 밴드로 Ventures의 연주가 시작되어 2시간의 여흥을 즐겼다.


2019년 한 해 다양한 문화행사로 천하제일의 동창회가 되도록 도와주신 친구들께 회장으로서 너무나 감사한 하루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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