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 수화

릴레이수필 제2382번째
박우성 수성치과의원 원장 2020-02-04 09:11:04

우리는 누구나 말을 하며 산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아픈 가슴을 달래기도 한다. 물론 가벼운 수다를 떨며 정겨운 시간을 보내는 데에도 말은 톡톡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상념에 빠지면 우리가 듣고, 말하고, 소통하는 모든 행위가 조물주의 큰 선물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만큼 말이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다.


오래 전 치과를 찾아온 농아 환자가 생각난다. 당시 그는 수화 통역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치과를 찾아왔다. 내게 손동작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신기하기도, 생소하기도,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움을 주시던 봉사자가 사라졌다. 진료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칠판을 들고 글을 써 가며 의견을 나눠봤지만 여전히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급기야 서점에서 수화 교본 몇 권을 사서 스태프들과 연습도 해보았지만, 영어도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회화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듯 수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해서 의사로서 환자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뒤 오랜 시간 여러 가지 방편을 구상해보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농아선교회에서 농아교실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나는 곧장 기초반에 등록하여 수화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자 새로이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농아인의 문화를 배우고 그들과 소통하며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 같은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어느덧 YMCA 수화교실에서 지도자반 강습까지 마치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는 것 같아 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가 표준식 수화가 아닌 농식이라는, 이를테면 관용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그동안 배운 수화가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금세 그와 소통하고 무사히 진료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을 겪으며 나는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농아인 분들의 삶을 알게 되었다. 말의 소중함도 새롭게 느꼈다. 수화를 사용하는 일은 내게 매번 새로운 즐거움을 주곤 했지만, 단어 선택이 단조로워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같이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지만 보람된 시간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가끔 노방이라는 발표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건청인에게 수화를 보급하며 노래를 부름으로써 사랑을 표현하는 행사다.


우리는 말을 함으로써 의사표현을 하고, 감정을 드러내고, 주장을 펼친다. 말은 생각과 가치관을 정리해준다. 그 속에는 삶의 여정이 어려 있기도 하다. 물론 말에는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릇된 말은 오해와 편견을 낳는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반면에 수어는 표정과 뜻이 함께 전달되어야 한다. 밝은 얼굴로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입으로 말하는 것이나 손으로 말하는 것이나 ‘말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겠지만, 수화를 배우며 나는 매일 말 같지 않은 말을 얼마나 쏟아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치과에서 수어라는 도구로 농아인과 마음을 나누며 감사의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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