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djob’ in 007 Goldfinger

시론
김용호 서울 중구회 고문 2020-03-16 16:24:16

▲ 김용호 서울 중구회 고문

이언 플레밍 원작의 영화 007시리즈의 1964년 ‘Goldfinger’(United Artist pictures inc.)에는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와 주연 악당 골드핑거보다 인상적인 조연 악당 ‘오드잡’이 등장한다. 해롤드 사카타(Harold Sakata)라는 일본계 미국 배우가 연기한 ‘오드잡’은 주연 악당인 Mr. 골드핑거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인데 1960년대의 서양 대중문화가 어떤 시각으로 동양인을 바라보는가를 엿보게 한다.


골드핑거와 제임스 본드가 서로 초반 탐색전을 벌이는 골프장 장면에서 골드핑거는 라운딩 시작 전 “내가 부리는 이 친구(오드잡)는 말도 못하고 캐디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데... 하기사 골프야 아직 동양의 스포츠가 아니니...”라고 그의 보디가드를 제임스 본드에게 소개하며 너스레를 떤다(자막에서 ‘동양의 스포츠’가 ‘한국의 스포츠’로 나오는 자막 버전도 있다).
게다가 골드핑거는 제임스 본드와의 골프라운딩 중 비겁한 사기행각을 벌이는데, 오드잡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동양인이란 소개가 무색하게 사기 골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그 이후 이어지는 여러 장면들에서도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의 목숨을 쉽게 빼앗는 악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다른 여러 007시리즈에서도 그렇듯이 조연 악당은 흑인이거나 생김새가 괴상하거나 험악한데, 영화 ‘골드핑거’에서는 그 당시 caucasian들에겐 낯선 황인종을 캐스팅하고 검정 수트와 모자까지 씌워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는 한국 조폭 영화에서 소위 ‘깍두기’들에게 검정 양복을 입혀서 더 폭력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


아무튼 1964년 당시 대표적 서양 대중오락 매체 내에서 조연 악당을 창조하는 과정 중 극히 작은 부분이지만, 동양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과 거침없는 창의력이 필자의 눈에는 그다지 곱지는 않다. 말(영어)도 못하고, 골프를 모르니 캐디 노릇도 제대로 못한다니... 아무리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대중매체지만 다른 집단을 배려하는 기본자세가 없었거나, 작가의 다양한 문화를 바라보는 교양이 부족했거나 이었겠지만, 앞선 문화와 문명을 뽐내던 진영의 위엄과 기품은 찾아볼 수 없다.


영화 ‘007 골드핑거’가 만들어지고 30여 년이 지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말도 못하고 골프도 몰라 캐디 노릇조차 못한다’는 오드잡의 나라에서 온 한국의 딸, 박세리가 엄청난 실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드라마 같은 우승으로 서양은 물론 전세계를 실로 놀라게 했다. 그것이 일회성의 깜짝쇼가 아님은 그 이후 여러 한국 여자골프선수들이 끊임없이 두각을 나타내고 선전하더니, 요즘에는 웬만한 LPGA 메이저 게임의 마지막 라운드 우승 경쟁그룹엔 서양 여자선수들보다 한국 여자선수들의 분주함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말 상전벽해(桑田碧海)에 주객전도(主客顚倒)요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불행한 근대의 역사와 6·25전후에 폐허 속에 벌거벗고 있는 고아의 사진들로 기억되던, 아시아에서도 극히 동쪽의 조그만 나라에서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반도체 전쟁에서는 미국과 독일과 일본과 대만을 침몰시켰으며, 급기야 봉준호가 아카데미라는 문화전쟁에서 4관왕을 휩쓸며 깜짝 놀랄 전과(戰果)를 거둔 주인공이 우리이다.


곰곰 생각해본다. 그들은 그들이 해낸 일들을 그들만큼 또는 그들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예전엔 골드핑거가 오드잡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골드핑거도 제임스 본드도 관객들도 오드잡이라는 이름은 그 이름 속의 odd라는 단어처럼 ‘짝이 맞지 않거나, 규칙이 없는, 또는 보편적이지 않거나 괴짜 같은’ 느낌으로 ‘지들 맘대로’ 지어 쓰는 것이 재미를 더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지금도 영화를 만들며 그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차마 그런 표현은 적어도 예전처럼 함부로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아직도 개를 먹고 미신을 숭상하고, 비위생적 문화와 잔인한 역사를 가진 낯설고 위험한 행태를 보이는 오드잡의 후손들’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가벼운 영화 속의 한 두 장면이고 비약의 느낌도 다소 있지만, 이렇게 본의 아니게 서로를 오드잡으로 보는 통에 안타깝고 불행한 상황으로 치달아버린 일들이 짧고 긴 역사적 사건들 속에 참으로 많지 않던가.


골프가, 반도체가, 아카데미에서의 성취와 업적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지는 않다. 분명 훌륭한 성취이고 재능과 노력의 결과이며 우수함의 증거이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고 기억할 것은 충혈된 눈으로 모은 재물로 큰 자동차와 넓은 집과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더 고귀한 문화가 아니듯, 뭘 더 많이 팔고 우승컵을 쥐었다고 이긴 것이 아니다.


요컨대 우리들 자신에 더하여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러한 훌륭한 성취의 시대에 걸맞은 우리들만의 높은 정신과 깊은 철학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증거하고자 하는 관심과 시도도 동반되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그것이 이루어져야 ‘골드핑거’의 작가가 가지는 ‘오드잡’류의 그릇된 선입감을 저쪽 문화 속에서 지워줄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상호존중을 기대해 볼 수 있고, 그 다음 서로의 문화와 존재를 인정하고 배울 수 있는 문명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본다.


우리 치과계가 선거와 더불어 어수선한 봄을 맞는다. 당선 측이나 낙선 측이나 예전보다 더 여유롭고 성숙하기를 기대하는 바, 부디 이기고 진 결과를 넘어 우리 치과계를 위한 더 높은 정신과 깊은 철학을 담은 참신하고 바람직한 행보를 보여주기 바란다. 혹여라도 결과와 관련하여 오해의 화신인 오드잡을 창조하는 듯한 그릇된 선입감이 생겨났다면, 앞서 얘기한 올바르고 참신한 자세와 노력들로써 그릇된 잉여물과 침전물들을 일소해주어, 우리 치과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전환점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이러한 당부의 또 다른 이유는 투표에 참여했던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 후의 후보자들을 눈여겨보며, 자신의 선택이 어떠했는지 한 번 더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모든 것은 이어지는 기회이고, 모든 것이 계속되는 위기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사
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치의신보 앱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