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건의료 관련법의 변화에 대한 비판적 이해 - 의사파업, 남의 일 아니다

기고
이주연 세브란스치과 원장 2020-09-09 12:09:12

▲ 이주연 세브란스치과 원장

지난 6월 말 연세대학교 본과 3학년 학생들의 ‘치과의료변화의 비판적 이해’ 과목에서 한 학생이 이런 글을 썼다. “찬성과 반대가 팽팽한 이슈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들이 함부로 법을 제정해서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표와 지지율을 얻기 위해 보여주기식 의사처벌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편법과 악용의 여지가 있다.”


7월 23일 보건복지부는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대, 첩약급여화, 원격의료 추진 방안을 발표하였다. 의사들은 정부가 의료계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순차적인 파업을 선언했다. 엄정한 법정대응 속에 대한전공의협의회는 8월 30일 자정 무렵 긴급회의를 통해 두 차례 투표를 통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원점부터 논의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명문화못해 준데요. 파업 중단 후 국회에서 다른 법안들 통과시켜 35일 만에 효력이 발생하면, 그 땐 가중처벌도 피할 수 없어요.”


치과대학(원)생들과 전공의사들의 상당수는 90년대 생들이다. 사회적 공정과 개인의 인센티브를 중시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못 박을 법·정책의 변화에 민감하다. 공공의대 설립의 주된 목적은 지역불균형 해소다. 젊은 의사에게 지역이나 업무를 지정해서 배치하는 공의제도는 1913년 의사규칙에서 시작되었다. 1965년 공의들의 반발이 심해 지정지역의사제도와 함께 폐지된 바 있다. 지방의 의료인프라가 잘 갖춰진 일본에서 1973년대에 10년간 실시한 공공의사제도나 자치의대도 낙수효과를 보진 못했다. 전공의들은 지방의 필수 공공의료 시설 증설에 대한 청사진 없이, 수만 늘리는 공공의대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남북 보건의료 교류 협력 증진법 제정안’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안’에 공통적으로 의료 인력이 지정·관리될 수 있는 조항을 보며 깨닫는다. 대한민국에서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 처음 제정한 국민의료법은 1944년 태평양전쟁시기에 총독부가 제정한 조선의료령의 근간을 계승하고 있다. 따라서 보통의 의·치대생들은 졸업 후 공중보건(치과)의사로서 코로나 19검체 검사를 하거나, 전시라면 45세까지 기술자동원령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다할 준비가 되어있다. 또 자원봉사나 생활인으로서 노동의 가치를 보상 받기 위한 것이라면 북한 뿐 아니라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보건의료를 경제발전과 남북통일, 국민안전의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민간 의료인인 자신들을 강제 동원하는 전근대적인 법이 제정된다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왜 의료인에게만 노인시대에 고갈될 건강보험과 불가항력의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강제하려고 하는가. 우리들은 안다. 건강보험 강제지정을 통해 한국의 의사와 치과의사들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값 싸고, 질 좋은 의료를 제공하는 훈련이 되어있다. 43년을 원가이하로 유지해온 건강보험수가가 부조리해도 그에 대한 호소조차 집단이기주의로 표출될까봐 감내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남아시아국가들이 갖춘 중앙구강보건행정조직도 선진국 정부들이 지원한 국립치의학 연구소 없이도, 한국의 치과의사들은 세계 표준의 치의학 교육과 임상, 연구체계를 만들었다. 특히 치과대학 교수들의 노력으로 2012년 개정 의료법에 국내치과의사 면허 취득을 위한 국가시험 응시자격으로 반드시 한국치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 인증을 받은 치과대학 및 치의학전문대학원의 졸업 또는 졸업예정 요건이 필수조건으로 명시되었고, 2015년에 개정된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절차가 정해졌다. 하지만 5월 이후 발의된 교육 법안들은 지방자치단체나 교육부장관 직권으로 현행법에 명시된 의학교육인증평가원의 인증을 거치지 않고 공공의대나 의대, 치대, 한의대를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의대교수들과 전임의들이 전공의와 학생들이 다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정부와 강대강 전선을 형성했다. 그 이면에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인증평가에 담긴 전문직업의식과 사회적 책무조차 부정당했다는 분노가 깔려있다. 언론들은 교육자적 양심이나 전문가적 식견보다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밥그릇을 지키려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프레임 속에서 보도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따지자면 학생수 증가는 대학재정에 도움을 주고, 비대면진료는 대형병원에 수혜가 돌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의사들이 극단적 결집현상을 보인 것은 자신들의 세대에 단추가 잘못 꼈던 의료체계의 문제해결에 대한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한편 환자단체들은 의사들은 환자를 위해 병원으로 돌아오고, 정부도 의료정책추진을 보류하고 공론화 할 것을 주장했다. 서서히 여론과 야당이 움직였고, 9월 4일 대한의사협회장과 더뷸어민주당은 코로나 19안정 후 원점 재논의를 합의하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아직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의사파업이라는 치킨게임에서 치과의사는 약간 비껴나 있었다. 하지만 치과계도 의·정 협의 결과에 따라 내년 건강보험 수가인상에 차질이 생길 것이며, 코로나 19가 안정된 이후 의사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OECD보다 낮은 치과의사수를 눈여겨 볼 분들도 계실 것이다. 2000년 보건의료기본법 제정에 의해 국가와 지역자치단체는 관련법규를 체계화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의료인력수급을 조절할 수 있다.


한국 치과의사의 윤리와 실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객관적으로 확보된 상태라면, 치과의사 수의 문제는 종합적인 연구와 국민적 의사수렴으로 협의해서 장기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나 연구자들은 보건의료입법안의 내용과 과정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고, 반드시 치과의사들도 의료개혁방안에 대한 협의와 구강보건 및 치과부분에 대해서도 국민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일본과 대만, 미국의 의료법을 간략히 살펴볼 때 의료인에 대한 ‘지도’와 ‘명령’ 조항이 우리나라처럼 별도로 존속하면서 강화되는 사례를 찾아보긴 힘들다. 그토록 한국의 역대 정부는 의료인들에게 규제 위주의 법규로 발전적인 법 행정을 기획해왔다. 의료는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고 사회계층에 따라 접근성에 차이가 생길 수 있는 분야여서 앞으로 더욱 중요하고 한 정치이슈가 될 것이다. 우리 치과의사들은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와 동기부여를 통해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치과의사들은 정치계와 국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최선의 진료와 효율적인 정책을 도모하는 보건의료기본법의 실행주체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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